남성마을 소개
“남쪽에 새롭게 뜨는 별” 이라는 뜻을 가진 제주의 남성마을. 문재인 정부가 추진하는 도시재생 사업에 선정 (제주시 삼도2동 일대)
남성마을은 과거 일제강점기에 화장터가 있어 동네 전체가 ‘화장터’라고 불렸으며 사람이 거의 살지 않는 지역이었습니다. 1950년대에 제주시의 급격한 인구 증가에 따라 원도심 내 행정·경제·교육 시설이 밀집되면서 기존 제주 읍성 안쪽(시가지)의 주택에서 원도심 내 노동자를 수용하지 못하게 되자, 자연 발생적으로 주거지역이 형성되었습니다.
<남성마을 표석제> 1997년 (출처 : photo.jejusi.go.kr)
<소용천풀베기작업> 1980년대 (출처: photo.jejusi.go.kr)
<농고-간호대학간 소용천 정비> 1960년대 (출처 : photo.jejusi.go.kr)
1955년 북제주교육청, 1957년 제주도립도서관이 설립되고, 1960년대 중앙로가 신설되면서 주거지역으로 성장해 왔습니다. 초반 마을의 주요 구성은 시가지 내 서비스(땔감 공급 등)를 제공하는 자이거나 석공과 같은 기술자였으며, 이후 제주시 밖 출신의 교사, 공무원 등이 주를 이루었는데, 제주읍성 안에 일터가 있거나 성안(城內) 사람을 대상으로 노동력을 제공했다는 특징이 있습니다.
1990년대에 들어 마을 주민이 주도해 ‘남쪽에서 떠오르는 별’이라는 의미로 ‘남성마을’이라 명명하고, 마을 중앙을 흐르던 소용천을 복개해 도로를 만들고 환경을 정비하여 현재의 환경을 갖추었습니다.
시대별 남성마을의 변화
일제강점기 - 암반지형을이용한 화장터 |
사람이 거의 살지않음 |
1950 - 마을 형성 시작 '화장터' 동네 |
40년대, 농업고등학교 '55 북제주교육청' 757 제주도립도서관 60년대, 중앙로 신설 |
40년대, 마차꾼, 석공거주지(빈촌이미지) |
1970 - 제주시 확장 마을인구 급성장 |
60년대, 중앙로 신설 |
70년대, 공무원, 교육자 증가 (제주성안과 차별) |
1990 - 마을 명칭 지음 '남성마을' |
'85 방송통신대학교 - 제주지역 학습관 '96 도립도서관 이전 90년대, 소용천 복개 |
90년대, 신도시 개발로 주거 및 직장 이동 |
2010 - 원도심 정체로 인한 마을인구 감소 |